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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네덜란드 청소년대표 출신 K4리거, 제리의 도전은 이어진다

 

뉴스팍 이소율 기자 | 축구는 전세계인이 참여하는 글로벌한 스포츠이다. 어느 곳에서나 외국인 선수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구FC의 세징야, 인천유나이티드의 무고사처럼 K리그에도 외국인 선수가 구단의 상징으로 거듭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로 낯선 환경에서 뛰는 것은 새로운 축구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두 차례 바다를 건너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 있는 K4리그 인천남동구민축구단(이하 FC남동) 소속의 제리 반 에위크(등록명 제리)는 이러한 도전을 즐기는 선수다.


제리는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 출신으로 자국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네덜란드 2부리그(에이르스터 디비시)에서 118경기를 뛰며 31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유럽 선수들과 달리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2017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 무대에 진출해 3시즌 동안 활약했다. 제리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이번에는 태평양을 건너 K3리그 천안시민축구단에 입단했다. 천안에서 팀 역사상 첫 외국인 선수이자 통합 K3리그 출범 이후 1호골 득점자로 기록된 제리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K4리그 FC남동으로 이적하여 K3와 K4리그를 모두 경험한 외국인 선수가 됐다.


지난 5월 FC남동 훈련장에서 만난 제리는 여전히 도전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한국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는 제리는 FC남동의 승격과 완벽한 한국 무대 적응을 올해의 도전으로 삼고 있었다.


안정보다 도전


-축구 선수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축구 선수였습니다. 부상 때문에 이른 나이에 은퇴했으나 재능 있는 선수였죠. 아버지 덕분에 축구를 어릴 때부터 접했고 5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8살 때는 PSV 아인트호벤 유스팀에 입단했고, 그때부터 축구선수의 삶을 살아왔어요.


-네덜란드 연령별 국가대표팀을 거쳤다고 알고 있어요.


어린 나이에 PSV 아인트호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운이 좋게 네덜란드 U-17 U-19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됐습니다. 당시 같이 뛰었던 선수로는 스테판 데 브라이(인터밀란)가 기억나네요. 얼마 전까지 경남FC에서 뛰었던 룩 카스타이뇨스도 저와 함께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습니다.


- 네덜란드에서 뛰다가 미국 리그로 이적해서 첫 해외도전을 했습니다.


사실 첫 선택의 기로는 16살 때 있었어요. 학교 진학을 택해서 미국 유학을 떠날지, 네덜란드에서 첫 프로 계약을 할 지의 선택이었죠. 그때는 프로 계약을 선택하고 이후 계속 네덜란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머물러 있기 보다 새로운 도전을 꿈꿨죠. 그러던 중 미국에서 프로 2부리그(USL 챔피언십)를 창설한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16살 때 놓쳤던 미국행 기회를 축구선수로 다시 살려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 무대 진출을 결심했습니다.


-USL 챔피언십의 오렌지 카운티 SC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미국 생활은 어땠나요?


미국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해외에서 직장을 구해 생활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날씨는 황홀했고, 생활 환경도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내를 미국에서 만났죠.


-그렇게 미국 생활에 만족했음에도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미국행을 결심할 때와 비슷하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원했어요. 축구선수로 더욱 성장하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는 곳, 가족들이 잘 지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고민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미국에서 딸을 낳았기 때문에 결정에 더욱 신중을 기했죠.


그때 마침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 구단에서 연락이 왔고,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운명 같은 일이었죠. 사실 제 아내는 한국 혼혈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16년간 한국에서 자랐어요. 아내가 한국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적응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으로 이적 후 K3리그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프로리그가 아니다 보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던 팀은 K리그2이었습니다. 그 팀의 동계훈련에도 참여했지만, 결국 계약은 하지 않게 됐죠. 그런데 그 팀에서 테스트를 위해 연습 경기를 뛰던 모습을 본 다른 에이전트가 저에게 천안행을 제안했어요. 다른 K리그 팀을 다시 찾기는 어려운 시점이었고 천안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가려 했던 프로리그가 아닌 건 아쉬웠지만 저는 항상 도전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무대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K3 선수들의 프로 정신에 감명받았습니다. 세미프로임에도 매일 훈련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천안시 축구단의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선수였고, 통합 K3리그 출범 이후 첫 골을 기록했습니다.


제가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외국인이었다는 점이 영광이고 천안 구단에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천안 김태영 감독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처음 와서 적응하기 바빴던 저에게 믿음을 주고, 자신감을 심어 줬어요. 그의 지휘 아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시 K4리그인 FC남동으로 이적했습니다.


천안에서 첫 시즌은 괜찮았지만 두 번째 시즌은 부상이 겹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1년을 보냈어요. 언어의 장벽 역시 큰 문제였는데, 구단에 영어를 할 수 있는 동료나 스태프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FC남동FC의 코치 문홍 코치의 연락을 받았어요. 문홍 코치는 제 에이전트와 아는 사이여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문 코치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FC남동에 합류하면서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영어가 능통한 문 코치의 존재가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고 이적을 결정했습니다.


-다양한 리그를 경험했는데 네덜란드,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 축구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먼저 한국 선수들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서 투지 있는 모습과 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모습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긴장감과 압박으로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훈련에 있어서도 유럽이나 미국은 기술 훈련의 비중이 높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경기가 잘 안 풀리면 훈련 강도를 세게 하거나 체력적인 문제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 체력 훈련보다 기술 훈련에 집중한다면 더 좋은 성과가 날 것이라 생각해요. 한국 축구 선수들의 수준이 이미 매우 높기 때문이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제리의 축구에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FC남동에서 가장 큰 도전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


리그 4위 안에 들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입니다. 팀이 잘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든 감수하고 싶어요. 현재 팀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FC남동과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항상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기는 걸 좋아하고 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한 경기씩 승리하여 반드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국 생활을 하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도 큰 도전입니다. 지금 직접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올해 연말에는 이런 인터뷰를 한국어로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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